설 연휴 한국영화 대방출

영화 이야기 2012/01/20 06:30 Posted by cinemAgora

곧 설 연휴죠, 극장가는 또 한번의 대목입니다. 올해 설 극장가에도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한국영화들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 비판 영화에서부터, 가족 휴먼 드라마, 그리고 멜로 영화까지 모두 4편의 한국영화가 흥행 각축전을 벌입니다.

작년 설에는 유난히 시대극이 많았었죠. <평양성>이나 <조선명탐정> 같은 영화들이 흥행 대결을 펼쳤는데, 올해 설 극장가에는 시대극이 없는 대신, 장르가 굉장히 다양해졌습니다. 법정 실화극을 표방한 <부러진 화살>, 코미디 영화 <댄싱퀸> 그리고 스포츠 휴먼 드라마인 <페이스메이커>, 멜로 영화 <네버 엔딩 스토리>까지 다양한 개성을 내세운 4편의 한국영화가 흥행 수위 자리를 놓고 맞붙게 됩니다.

우선, 작년 가을에 <도가니>가 흥행을 해서인지 또 한번의 법정 드라마인 <부러진 화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던데요. <부러진 화살>은 지난 2007년 초에 실제로 벌어졌던,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는 작품인데요, 한 대학 교수가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데 대해 소송을 했고 거기서 패소한 데 불만을 품고 담당 판사를 찾아가 석궁 공격을 가했다, 해서 언론에서도 상당히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바로 그 사건을 영화로 재연하고 있습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건의 주인공인 김교수가 석궁 테러를 어떻게 가하게 됐는지에 대한 사건의 재구성이라기보다, 기소된 이후의 재판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영화는 당시 재판부가 이미 김교수를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낙인을 찍고, 유죄를 사실상 확정 지은 상태에서 짜맞추기 식 재판을 했다, 그런 입장으로 극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사법부가 진실이나 법보다는 권위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요.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은 당시의 재판 기록을 면밀히 분석해서 거의 있는 그대로 영화에 옮겼다, 이렇게 밝히고 있는데요. 안성기가 연기한 김교수가 워낙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그런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어서 객석에 묘한 통쾌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올 설 극장가 개봉작 가운데서는 가장 문제작이 될 것 같구요.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하느냐에 따라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파 영화는 아니지만 서울 시장 선거를 소재로 삼은 영화도 있습니다. <댄싱 퀸>이라는 작품인데요. 황정민이 변호사 출신으로 서울 시장 후보로 출마하게 되는 상황에서 엄정화가 맡은 그의 아내가 뒤늦게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걸그룹에 도전하게 되는 상황을 코믹한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는 영홥니다.

영화 <댄싱 퀸>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가지 요소, 즉 정치의 세계와 연예 비즈니스의 세계를 충돌시킴으로써 웃음을 만들어내는 코미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요. 일단 상당히 웃깁니다. 그런 점에서 코미디로서의 기본은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탄생이 됐습니다.

정치에 대한 현실 풍자와 더불어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지를 보내주는 게 가족이다, 하는 메시지를 담으면서 가족 휴먼 드라마적인 요소를 함께 결합시킨 작품입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라는 점에서 올 설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가운데서는 흥행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작년 설에도 김명민 주연의 <조선명탐정>이라는 영화가 흥행이 아주 잘됐는데, 올 설에도 또 찾아왔군요, 이번에는 마라토너로 변신했습니다. <페이스 메이커>라는 영화입니다. 영화 제목 페이스 메이커란, 마라톤에서 우승 후보가 될 선수를 위해 페이스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 선수를 의미합니다. 이 영화 속에서 김명민이 맡은 주만호라는 인물이 바로 그렇게 평생 페이스 메이커로 뛰었던 노장 마라톤 선수로 나오는데요.

친구 집에 얹혀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렵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생만을 위해 달리기를 했던 주인공이, 생애 처음으로,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레이스에 나가게 되는 과정을 스포츠 휴먼 드라마 특유의 호흡으로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영화 막판에 런던 올림픽 장면은 꽤 감동적으로 연출이 됐는데, 문제는 그때까지 영화가 너무 페이스를 조절하다 보니까 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게 흠입니다. 막판 스퍼트를 위해 숨을 너무 고른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엄태웅과 정려원이 호흡을 맞춘 <네버 엔딩 스토리>라는 작품입니다. 설정은 일단 재미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녀가 죽을 때까지만 서로 애인 사이로 지내기로 하고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작품인데요.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인지 멜로인지 장르가 애매모호한 게 이 영화의 단점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기엔 죽음을 앞둔 남녀의 알콩 달콩 러브 스토리가 별로 안웃기구요, 멜로하고 하기엔 또 그다지 슬프지 않습니다. 제목이 <네버 엔딩 스토리>인데, <네버 차밍 스토리>라고 제목을 바꿔주고 싶네요.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네 편의 영화 가운데 딱 한편만 골라달라, 하시면 전 주저 없이 <부러진 화살>을 추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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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영화 <도가니>가 일으킨 사회적 파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아무도 영화 한 편이 이토록 위력적인 영향을 발휘하게 될지 몰랐을 것이다. 하마터면 수면 밑으로 가라 앉을 뻔한 광주 인화학교의 천인공노할 성폭행 사건을 끄집어낸 이 영화는, 경찰의 재수사뿐 아니라 관련 입법 추진까지 이끌어냈다. 영화가 현실의 부조리를 상기한 걸 넘어 현실의 개선을 견인한 사례이니, 이 시대엔 영화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새삼 재확인시킨 셈이다.

사실 <도가니>와 같은, 이른바 사회파 영화의 강세는 2010년 가을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부당거래>가 비리 경찰과 비리 검사의 힘겨루기라는 설정을 통해 이 시대 공권력의 부도덕을 통렬하게 비꼬았다면, <도가니>는 실존했던, 사법 시스템의 무기력을 도마 위에 올림으로써 공분을 자아냈다.

두 영화의 흥행 이면에는 관객들의 결핍이 있다. 그것은 정의에 대한 결핍이며, 정의를 지켜야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다. 방법론은 다르지만 <완득이>의 흥행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다. <완득이>의 ‘동주’ 선생님은, <부당거래>와 <도가니>가 들춰낸 결핍을 대리 충족시키는 아이콘이다. 관객들은 완득이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를 넉넉하게 껴안는 동주를 통해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정의로운 리더의 모습을 바라본다. 말뿐인 정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의가 작동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그리고 눈물 짓는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1월 19일 개봉하는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은 어쩌면 최근 이어져온 일련의 한국 사회파 영화의 화룡점정과도 같은 역할을 할 만한 작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도가니>처럼 실제 사건을 끄집어내는 가운데서도 <도가니>보다 더욱 도전적이고, 따라서 기득권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불온하다. 하지만 그만큼 통렬하다.

사회 문제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몇 년 전 언론 매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디테일한 사건의 전모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언론에 의해 다뤄진 그 사건의 키워드는, ‘사법부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바로 그 키워드에 대한 거역을 시도한다. 그리고 사건의 주인공이, 그러니까 석궁을 들고 판사를 찾아간 대학교수가 왜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으며 재판 과정에서 실제로 어떻게 도전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 헤친다. 영화는 그 과정 속에서 이미 결론을 내고 진행되는 재판, 또는 이미 유죄를 확정짓고 그 전제를 향해 나아가는 재판의 우스꽝스러움을 전시한다. 관객들은 씁쓸하게 웃게 될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정말 코미디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석궁 사건의 용의자, 안성기가 분한 대학교수의 깐깐한 캐릭터가 주는 묘한 매력이 발산된다.(2000년대 이후의 배우 안성기에게 이토록 잘 어울리는 캐릭터가 또 있었을까?)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는, 형사소송법을 들이대며 재판정의 논리가 아닌 법의 논리로 자신을 단죄할 것을 요구한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재판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미 사법부에 대한 괘씸죄를 짊어진 그에 대해 재판부는 관용을 베풀거나 법의 논리에 충실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영화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영화는 시대를 느끼는 관객의 정황적 정서에 가 닿는다. 정황적 정서란 뭘까? 나는 그것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라고 부르겠다.

90년대 초반 <남부군><하얀전쟁> 등의 문제적 영화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통찰했던 정지영 감독은, 모처럼 메가폰을 쥔 대중 영화 <부러진 화살>을 통해 바로 지금, 이 시대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논평한다. 그 논평은, 1980년대 할리우드 직배에 맞서 극장에 뱀을 풀었던 그답게, 아주 맵고 야멸차며 독하다.

2012.1. 빅이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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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의 실패가 남긴 것

영화 이야기 2012/01/16 07:24 Posted by cinemAgora

 


한국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인 300억 원을 들인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 <마이웨이>가 흥행 부진을 보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합작 모델을 통해 국내 영화 시장의 한계를 뛰어 넘어보려던 야심은 물거품이 되는 것일까요.

<마이웨이>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주말에 개봉해서 개봉 4주차인 지난 주말까지 모두 2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200만 명이면 왠만한 영화면 흥행했다고 볼 수 있을텐데, 이 영화의 경우 부진이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제작비 규모 때문이겠죠. 알려져 있다시피 제작비가 300억 원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산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천만 명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마이웨이>는 국내 시장만은 겨냥한 영화는 아닙니다. 당장 지난 주 일본의 300개 관에서 대규모 개봉했습니다. 이르면 다음달 말에는 중국에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 이미 60개 나라에 선판매돼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부진이 반드시 흥행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역시 국내 성적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해외 시장에서의 흥행을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최소 500만 명 이상은 들어야 안정권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200만 명은 굉장히 부진한 성적임엔 분명합니다.

제작진들은 상당히 당혹스러워할게 당연할 테고요, <마이웨이>의 이런 흥행 부진에 대해 영화계는

한마디로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으로도 <마이웨이> 같은 대작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죠.

사실 한국 시장만은 놓고 봤을 때 제작비 300억 짜리, 그러니까 손익분기점 천만 명 짜리 영화를 만드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죠. 최근의 한국 상업영화들은 대체로 200만 명 정도, 제작비를 좀 썼다 하는 블록버스터라 할지라도 300만 명 정도를 손익분기점으로 잡아 놓고 만들어집니다. 이 얘기는 한국영화가 쓸 수 있는 제작비 규모가 최대 100억 원을 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작비 규모가 한정되면, 당연히 표현의 영역도 한정됩니다. 감독이 추구하고자 하는 영화적 세계가 만약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표현력을 필요로 한다 할지라도 한국영화계에선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하지만 강제규 감독은, 그런 시장의 한계를 여러 나라의 합작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돌파하려는 시도를 했죠, 한마디로 타깃 시장을 한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로 넓게 잡은 것이고, 그 결과물이 바로 <마이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야심찬 시도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영화계에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겠죠.

그렇다면 왜 부진했나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한마디로 다국적 합작 영화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웨이>의 경우,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시장을 동시에 겨냥해야 한다는 기획적인 측면이 영화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단 캐스팅부터 그런 포석을 염두에 두고 있죠, 한국의 장동건, 일본의 오다기리 죠, 그리고 중국에선 판빙빙을 캐스팅했습니다.

3국 시장을 동시에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스토리에도 적용이 됐습니다. 한국의 젊은이와 일본의 젊은이가 서로 라이벌 관계였다가 전쟁의 역경을 통과하면서 서로의 희망이 된다는 스토리인데요. 문제는 이 스토리가 국내 관객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여전히 식민지 가해자이고 역사적 앙금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한일 젊은이의 우정을 다룬 설정이 관객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왔다는 것이죠, 게다가 많은 대사가 일본어로 처리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은 이 영화가 친일 매국노 영화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비교적 높게 평가합니다. 한국 전쟁영화 가운데서는 가장 뛰어난 전투신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그동안의 우리나라 전쟁영화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한국 전쟁을 뛰어 넘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2차 세계 대전을 재연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성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씀드린 동아시아 합작 영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이 영화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한국과 일본, 또 중국이 가진 근현대사의 역사적 경험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 또 일본이 가진 상반된 정서를 합작 영화가 돌파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마이웨이>는 반증해 보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마이웨이>의 흥행 부진이 남긴 시사점은 있을 것 같은데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동아시아 3국은 서로 비슷한 듯하지만 굉장히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합작 영화가 뛰어 넘어야할 가장 어려운 관건 가운데 하납니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치다 보면 다른 나라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없고, 여러 나라를 동시에 고려하다 보면 어정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합작 영화의 경우엔 좀더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영화 <마이웨이>는 일종의 타산지석이 된 셈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협소한 국내 시장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선 이런 다국적 합작 영화가 좀더 자주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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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중앙정보부 제3차장 C는 공작원을 방글라데시로 급파한다. 조직 내부 첩자가 북파 간첩 정보를 북한에 흘리고 있다. 첩보를 쥐고 있는 방글라데시 정보원을 꼬드겨 와라. 하지만 작전은 실패하고, C가 문책당해 옷을 벗는다. C는 휘하 다섯 과장 중 S 과장도 같이 사표를 쓰게 한다. S는 집에서 논다. 육십 대 C 차장은 심장마비로 죽는다. 어느날 중앙정보부장이 은밀히 S를 호출한다. 첩자가 분명히 있다. 다섯 과장 중 한 명이다. 색출하라. S는 C 차장 거처에서 체스판과 다섯 말을 발견하는데 말에는 다섯 과장의 사진이 각각 붙었고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라는 코드명이 적혔다. 어느 놈일까? S는 조직에서 쫓겨났지만, 조직 내 끄나풀을 이용해서 운동가 청사에서 관련 서류를 빼내온다. 여담이지만 S는 몇 년 전 이문동 청사에서 있었던 크리스마스 파티가 가끔 떠오른다. 무대에 김일성 가면을 쓴 산타클로스가 깜짝 등장해서 "아침은 빛나라  강산/은금에 자원도 가득한/삼천리 아름다운  조국/반만년 오랜 력사에…"라는 노래를 부르자 모든 직원이 반색하며 따라 부른다. 무슨 노래야? 그날 S는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아버린다. 아무튼, 첩자를 잡자.

냉전 시대 스파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 한국개봉 2월 9일)는 영국 스파이 소설가 존 르 카레가 1974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첫 작품이다. 1979년 영국 BBC에서 7부작 TV 시리즈로 방송되어 호평을 받았다. 내용은 소련 KGB가,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영국 정보기관 MI6에 심어놓은 첩자를 찾는 과정을 다룬다. 하지만 영화는 제임스 본드 하면 떠오르는 최신 무기, 총격전, 차량 추격전, 액션, 섹스가 없다. 이게 스파이 영화야? 총 한 세 방 쏘고, 예쁜 여자 한 명 나오고, 인생 다 산 중년 남자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회색빛 관료체제 내에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인다. 게다가 배경은 사십 년 전이다. 박정희 치하 한국에선 이후락이 중앙정보부장을 하고 있었다. 이후락이 누구야? 냉전은 미국이랑 소련이랑 한 거 아냐? 왜 영국이 나와? 그리고 총 맞았던 공작원이 왜 사립학교에서 외국어 선생을 하고 있지? 누가 누구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사십 대 후반 영어권 영화 애호가가 좋아하는 영화다. 대부분의 영화 평론이 1979년 알렉 기네스 주연의 동명 BBC 시리즈를 언급하는 걸 보면, 영화는 TV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존 르 카레 스타일을 모르면 이야기를 따라잡기 어렵다.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난 한편 혼란스러웠고 다른 한편 길을 잃은 느낌을 받았다."라고 고백하며, 용감하게 평점 3.0/4.0을 줬다. 흥행에서 실패했다.

게리 올드먼 주연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보기로 작정했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적어도 예고편을 보고 사람 이름을 미리 외워야 한다. 결말에 가도 친절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좌절 인정한다. 하지만 당신뿐만은 아니니 안심하라. 마지막으로 영화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최면을 걸고 나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35세 이하 관람 비추.

-하일수(미쿡 사는 3M흥업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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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학교 폭력

영화 이야기 2012/01/08 13:55 Posted by cinemAgora

최근 학교 폭력이 다시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요. 이 문제는 사실 영화에서도 자주 다뤄졌던 소재이기도 합니다. 폭력에 방치된 청소년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기성 세대의 자성을 촉구하는 영화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영화들 가운데 학교 폭력을 다룬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작품이 떠오르는데요. 유하 감독이 연출하고 권상우씨가 주연을 맡아서 지난 2004년에 개봉했던 작품인데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지금의 학교 폭력을 다룬 영화는 아니고요, 어쩌면 유하 감독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라는 시대상과 맞물려서 당시 학교 문화를 폭력의 관점에서 들여다본 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교사들의 폭력 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세력 다툼이 심한 가운데, 주인공 현수가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과정을 당시 유행하던 이소룡이라는 아이콘을 빌어와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 가운데 학교 폭력을 조금 더 진지하게 조금 더 정면으로 다뤘던 영화는 박기형 감독의 2006년작 <폭력 서클>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재미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라면 <폭력 서클>은 제목 그대로 폭력으로 얼룩진 학생들간의 끔찍한 폭력 사태를 다루고 있습니다.모범생이었던 상호가 어떻게 서서히 폭력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지를,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작 가운데서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있는데요. 지난해 가을에 개봉해서 조용히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입니다. 중학교 1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일군의 무리에 주인공 두 학생이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요, 여기에 이들에 저항하는 철수라는 학생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급변하게 됩니다. 괴롭힘을 당하던 두 두 학생은 철수와 힘을 합쳐서 가해 학생들에게 맞서보려 하지만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힘 센 학생의 횡포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다수 학생들을 돼지로 묘사하면서, 학교 폭력의 이면에 대한 성찰까지 녹여내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이 반드시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사회 문제도 대두되곤 하죠. 최근에 나온 영화 가운데 미국 영화 <그랜토리노>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미국의 배우 출신 거장 감독이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 겸 주연을 맡았던 영화입니다.

한국 전쟁 참전 용사 출신의 한 노인과 아시아 소수 민족 출신의 10대 청소년이 서로 이웃에 살면서 교감을 나누게 되는 과정을 넉넉한 노장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부의 총잡이로, 혹은 거친 형사로 영화에 출연했던 자신의 배우로서의 전성기에 대한 일종의 고해성사를 바치고 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요. 아이들이 서로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걸 목격하면서, 세상을 이렇게 폭력적인 상황으로 만든데 일조했다는, 기성 세대로서의 안타까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일본 영화인데요, 지난해 봄에 국내 개봉했던 <고백>이라는 작품입니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연출했구요, <4월 이야기>라는 영화로 우리나라에도 낯이 익은 마츠 다카코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영화 <고백>은 자신이 교사로 일하는 중학교에서 어린 딸이 사망한 여주인공과 관련된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이 여교사는 자신의 반 학생 가운데 딸을 죽인 범인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반 아이들에게 말하게 되고요, 그들에게 에이즈에 감염된 우유를 먹였다, 이런 얘기를 고백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가해자로 드러나는 학생들이 결국 부모들의 무관심 또는 과도한 관심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드러내는데도 게으르지 않은데요. 그래서인지, 학생들과 더불어 그 부모들에 대해서도 단죄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이란 게 결국 기성세대가 떠안아야할 문제라는 메시지를 녹여내고 있는 것이죠.

그런 차원에서 학교 폭력의 문제에 좀더 성찰적으로 다가간 영화 한편이 있는데요. 역시 지난해 개봉한 <인어베러월드>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는 정의로운 의사 안톤입니다. 그는 부족간의 폭력적 분쟁의 와중에 희생당하는 여성이나 어린이 등의 약자들을 치료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지 못합니다. 잠시 휴가를 얻어 유럽의 집으로 돌아왔는데요, 거기서 자신의 열 살난 아들 엘리아스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죠.

영화 <인어베러월드>는 끔찍한 살육이 진행되는 아프리카와 보이지 않는 듯 진행되는 유럽 초등학교의 학교 폭력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과연 어떻게 끊을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녹여냅니다. 영화에 따르면 그 유일한 해결법은 용서와 관용인데요. 누군가 먼저 용서하고 참지 않는다면, 폭력의 고리를 막을 수 없다, 이런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죠.

어쨌든 이들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공통된 시사점은 이겁니다. 폭력적인 세상이 폭력적인 교실을 만든다. 그러므로 학교 폭력은, 단순히 가해 학생을 처벌하거나 격리시키는 것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어쩌면 약한 이에게 가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의 폭력성,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부조리를 방관하는 침묵의 고리를 방치한다면, 학교 폭력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교실은 세상의 거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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