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금 영화의 흥행 법칙

영화 이야기 2012/05/10 11:38 Posted by cinemAgora

최근 한국영화계에 18금 영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다는 얘긴데요.

수위가 높은 노출신이 등장하는 영화라도, 흥행에선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올 봄에 이어지고 있는 18금 영화의 행렬에 첫 테이프를 끊은 영화는 바로 에로틱 코미 스릴러를 표방한 <간기남>이라는 작품입니다. 지난달 11일 개봉했는데요. 영화 제목 <간기남>은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간통 전문 형사입니다. 어느날 남편의 간통 현장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현장에 갔다가 살인 사건에 엮이게 되는 상황을 한편으로는 코믹하게, 한편으로는 스릴러의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미스터리를 품은 미망인으로 등장한 박시연 씨가 꽤 수위 높은 노출신을 선보였습니다만, 흥행 성적이 아주 좋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주말까지 120만 명 수준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지난달 말에 개봉한 <은교>라는 작품도 있죠. 박해일 씨가 70대 노인으로 분해서 주목을 끌었는데, 이 작품 역시 흥행면에서는 썩 잘됐다고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개봉 2주차인 지난 주말까지 100만 명을 넘어섰는데요,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로 이 정도로도 선전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어벤저스>의 파상 공세에 밀리면서 기대를 밑도는 관객 동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은교>는 박범신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70대 노인과 여고생 간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는데요, 다소 자극적인 설정 속에서 두 차례의 꽤 수위 높은 베드신이 등장합니다.

 

 

 

 

앞으로도 18금 영화가 몇 편 더 이어집니다. 당장 다음주에 임상수 감독의 신작 <돈의 맛>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라는 영화와 더불어 나란히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있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영화 <돈의 맛>은 한 재벌 가문을 중심으로 황금 만능주의에 찌든 인물들의 탐욕과 욕정을 풀어 놓고 있는 작품입니다. 백윤식, 윤여정, 김강우, 김효진 등의 배우들이 호흡을 맞췄는데, 영화 속에서 꽤 강도 높은 베드신이 등장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음달 초에 개봉하는 김대승 감독의 작품 <후궁: 제왕의 첩>이라는 작품도 에로틱 사극을 표방한 작품입니다. <방자전>이라는 작품에서 춘향이를 연기했던 조여정 씨가 이번에는 후궁으로 분해서 역시나 높은 수위의 노출 연기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상대역으로는 <국가대표>에 나왔던 김동욱 씨와, 모델 출신의 배우 김민준 씨가 나옵니다.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물씬 풍겨 나오듯, 궁중을 배경으로 상당히 에로틱한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해 이렇게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영화가 기획되고 개봉할 때까지 평균 2년에서 3년 정도 걸립니다. 그런 걸 감안하면 지금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지난 2008년 말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던 유하 감독의 <쌍화점>이라든가, 같은 해 개봉한 <미인도>, 그리고 2010년의 <방자전> 같은 영화들의 흥행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에로틱한 영화로 승부수를 거는 건 한국영화계의 오랜 전통이기도 합니다. TV 매체와 볼거리를 앞세운 할리우드의 양면 협공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틈새 시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면 노출 수위에 따라 흥행 희비가 엇갈리는 게 아니라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벗었다고 해도, 영화 흥행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3년에 개봉한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작품이죠. 에로 영화 전문 감독으로 잘 알려진 봉만대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상당한 수위의 베드신이 등장합니다만, 극장 흥행에서는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쌍화점>이나 <미인도> <방자전> 같은 영화는 흥행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죠.

 

이런 사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에로틱하되, 에로틱한 면이 전면에 부각되는 영화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에로틱한 부분을 드라마에 녹여내면서 슬쩍 가리는 전략이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가 많은데요. <쌍화점>이나 <방자전>도 그런 전략을 구사해서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죠.

 

또 하나, 최근 한국영화계에 유행되는 흐름 가운데 하나가 에로틱한 설정을 시대극의 틀로 담아내는 겁니다. <쌍화점>도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왕의 호위 무사와 왕비와의 격정적인 사랑을 담아내 성공한 경우죠. 앞서 김대우 감독의 <음란 서생>이라는 작품 역시 한 한량 사대부와 후궁 간의 은밀한 사랑을 코믹 사극의 형식으로 담아내 흥행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야하되, 야한 부분이 너무 도드라져선 안된다 이 얘기입니다. 왜 그런걸까요. 성적인 코드에 대한 관객들의 이중적 태도가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성적인 코드가 전면에 드러나게 되면, 관객들이 민망해 하거나 거부감을 갖기 십상이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렇게 홍보를 하게 되면, 관객들이 갖는 거부감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18금 영화가 일종의 해법을 찾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또 하나 의미심장한 흐름은 여자 배우 못지 않게 남자 배우의 노출도 중요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야한 영화의 주요 소비층 가운데 여성 관객들도 많기 때문에 그들의 관음적인 욕망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흥행 전략이 최근 들어 자주 구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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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소리' 투박한 감동

영화 이야기 2012/05/10 11:21 Posted by cinemAgora

 

 

때로는 투박한 것에서 감동을 얻을 때가 있다. 강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며 소담하게 피어 있는 들꽃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도심의 화초보다 더 매력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것처럼 말이다. 젊음은 서툴고 거칠어서 찬란하게 아름답다. 특별히 꾸미지 않았음에도 꺄르르 웃는 여고생들의 미소는 그 자체로 눈부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수천억 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스펙터클한 공습에도 불구하고, 간혹 아주 소박한 이야기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가로채 버린다. 2002년에 화제를 불러 모았던 <집으로...>라는 영화도 그랬다. 아마추어 배우도 그냥 아마추어가 아닌 70대 할머니를 과감하게 캐스팅한 이 작품이, 그것도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낸 이 영화가 300만 명이 넘는 대규모 관객을 동원할 것이라는 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또 어떤가. 고작 1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촌부와 죽음을 앞둔 늙은 소의 우정을 카메라에 담아 2009년 초 역시 30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규모에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때론 작고 소박한 진심에 열렬하게 반응한다. 두 작품은 그걸 웅변한 셈이다.

 

10일 개봉한 <두레소리>라는 작품도 ‘소박한 진정성’이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와 닮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극영화의 형식을 띄면서도 살짝 다큐멘터리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두레소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그 당사자들의 후배들이 아마추어 배우로 참여해 연기를 펼친 작품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국악합창단 ‘두레소리’의 창단 실화를 실제 두레소리 멤버들이 직접 재연한 영화다.

스스로 국악에 관심이 지대한 조정래 감독은, 한국판 <스쿨 오브 락>을 연상시키는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그 주역들의 후배들로 하여금 연기하게 함으로써, 또한 창단에 참여한 선생님을 그대로 그 역할로 기용함으로써 형식과 내용의 진정성을 한꺼번에 포획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오로지 입시에만 골몰해야 하는 처지의 학생들이 수업 일수를 채우려고 급조된 합창단에 참여한다. 이 대목은 일본 영화 <스윙걸즈>를 닮았다. 서양 음악을 전공한 선생님은 서양식 합창을 가르치려 들지만, 국악이 전공인 아이들은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 결국 방향을 튼 선생님은 국악 합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아이들과의 소통과 교감에 성공한다. 그러나 신종 플루라는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이들이 참여하려던 합창 대회는 무산되고, 두레소리도 해체되고 만다. 멤버들은 그동안 두레소리에 쏟아 부었던 열정이 아깝다. 그래서 선생님을 설득해, 몰래 합창 대회에 도전하기로 한다.

 

영화 <두레소리>는 이 과정에서 두 명의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데, 판소리 명가의 손녀딸로 설정된 슬기와, 부모 없이 이모와 살아가는 아름이다. 둘도 없는 단짝이지만, 서로의 처지가 다름에서 오는 미묘한 갈등 끝에 둘의 관계도 파국으로 치닫는다. 여느 청소년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우정의 드라마를 두레소리의 창단 이야기와 엮어내는 조정래 감독은 투박하고 거친 화면 연출 위에 꽤나 흥미로운 극적 긴장감을 얹는 데 성공한다.

 

<두레소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연은 역시나 음악이다. 국악 창법으로 합창이 어떻게 가능하며, 화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음악 영화로서 <두레소리>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진미이다. 주류 음악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국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한 그 분야에 대해, 영화는 뭔가를 던져준다. 그것이 “아, 좋구나“라는 감탄사라면, <두레소리>는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한 셈이다.

 

<두레소리>는 투박한 영화다. 그러나 그 투박함은, 열정을 쏟아내는 영화 속 인물들의 투박함과 닿아 있다. 그래서 제작비 1억 달러 짜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것 이상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다. 그 아름다움은 여운도 길다.

 

2012. 5.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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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살 샘' 소년에게 배우는 죽음

영화 이야기 2012/04/19 17:53 Posted by cinemAgora

 

당신은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언제 처음 했었나. 내 경우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중학교 2학년 때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내게 죽음이란 건 너무 막연한 것이어서, 도무지 내 생명이 끊긴다는 것,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위해 우습게도 관에 누운 듯한 자세로 오랫동안 숨을 참아본 적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실제 죽음을 목격하게 될 때까지 죽음은 초현실의 개념으로 남았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대개의 사람들은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거나 모른 척 하고 삶의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산다. 아마도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은, 그 자체로 너무 고통스러울 게 뻔하니까 말이다.

 

<열두살 샘>의 주인공 샘은 시한부 백혈병 환자다. 어쩌면 죽음이란 걸 생각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 나이에,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목록에 적는, 이른바 ‘버킷 리스트’라는 걸 만든다. 열두 살 소년답게 그의 버킷 리스트는 딱 그 나이답다. 과학자 되기, 공포영화 보기, 에스컬레이터 거꾸로 타기, 비행선 타보기, 어른처럼 술 마시고 담배 피기, 여자 친구랑 키스하기, 우주선 타고 별보기, 뭐 그런, 어떤 것은 시답지 않고, 어떤 것은 실현 불가능할 것들.

 

병원에서 만난, 역시나 시한부의 또래 친구인 펠릭스와 함께 샘은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차근차근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영상에 담는다. 그로서는 매우 운좋게도 그의 노력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그는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거의 모두 실현한다. 물론 여자 친구랑 키스하기의 순간이 그로선, 그리고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가장 짜릿하다.

 

시한부 환자가 속한 가족이 대부분 그렇듯, 샘의 가족도 어둡고 우울하다. 특히 샘의 아빠는 샘이 곧 죽는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샘은 그런 아빠가 못마땅한 한편, 측은하다. 어떤 계기를 통해 이제 죽음을 얼마 남지 않은 샘과 아빠는 비로소 진심어린 소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버킷 리스트를 채운다.

 

이렇게 줄거리만 전해 듣는다면 <열두살 샘>은 어느 시한부 꼬마의 슬프고 처연한 사연을 펼쳐 놓으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세게 자극할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되실 것 같다. 그러나 그 짐작은 틀렸다. <열두살 샘>은, 오히려 상당히 유쾌하고도 가벼운 호흡으로 샘의 버킷 리스트를 따라 간다. 이 과정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자, 샘을 둘러싼 가족들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어찌 보면 그 사실이 샘에게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찾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에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방식에 대해, 그가 열두 살이든, 팔순 노인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를, 어떤 보편적 미덕을 관객들에게 툭 던져 놓는다.

 

영화를 보며 나는 그 미덕을 샘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하고 싶은 일을 다하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것은, 죽음 이후에 남게 되는 이들을 제대로 위로하고 가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샘의 버킷 리스트의 진정한 마지막 항목이었을 것이다. 죽는 자는 사라지지만, 남는 자는 자신들의 삶을, 그리고 상실의 아픔을 또한 견디며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어쩌면 그들에게 사멸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만으로도 넉넉한 위안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샘은 그의 행동으로 가르친다. 그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가 살아 있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예의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12년의 짦은 생을 마감해야 하는 샘 역시 살아 있는 자들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더 나아가 삶의 스승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영화 <열두살 샘>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꽤나 유쾌한 방식으로 성찰할 기회를 준다. 죽음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삶을 제대로 완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극장문을 나서며 해봤다.

 

2012.4. 빅이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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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세대가 바라본 아버지들의 흑역사


79년생 감독 윤종빈이 결국 일을 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얘기다. 시사회 직후의 반응부터 심상치 않더니 결국 300만을 훌쩍 넘어서며 흥행 가도에 안착했다. 이 영화, 물건이다.

사실 윤종빈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작품으로 만든 <용서받지 못한자>(2005) 때부터 될성부른 나무였다. 1년 과선배인 하정우를 일약 대스타의 출발선에 세운 그 영화는,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위계의 폭력이 남성들의 내면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세밀한 고찰을 선보였다. 단지 주제 의식만 돋보였다면 윤종빈은 덜 주목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스터리 틀을 차용한 그의 이야기 꾼으로서의 재주도 남달랐다. 국내 굴지의 배급사가 그를 날름 채가 신작을 맡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흔히들 ‘마초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왜곡된 남성성의 근원을 군대에서 찾았던 그는, 여성들을 상대로 접대를 하는 호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비스티 보이즈>(2008)에서 비로소 사회로 시선을 돌린다. 이 영화는 서울의 강남이라는, 서슴없이 인간을 상품화하는 가운데 욕망과 저주가 교차하는 시공간에 초라하게 서 있는 패배자들을 바라본다. 여성들을 상대로 “공사”를 하며 먹고 사는 재현(하정우)과 자신의 애인에게 무시 당하는 게 죽기 보다 싫은 승우(윤계상)라는 인물을 통해 윤종빈은, 남녀 위계의 질서를 거역해야 하는 직업적 상황 속에서 혼란에 빠져드는 루저 수컷들의 발악을 목격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눈 앞의 여성을 착취하고, 린치하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비스티 보이즈>는 <용서받지 못한 자>의 강남 버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세 번째 작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역시 윤종빈의 문제 의식이 깊어지고 확장되는 연장선에 놓여 있다. 윤종빈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조폭 누아르의 틀을 가진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 세대의 생존 방식을 까발린다. 아버지 세대의 생존 방식이란 뭘까. 한마디로 그것은, 주인공 최익현(최민식)이 상징하는 바, 유착이고 허세이며, 기회주의로 규정된다.

부패한 세관 공무원 출신의 최익현은 세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마약 밀매에 손을 대기로 결심하고, 부산의 잘 나가는 건달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그는 종친이라면 사돈의 팔촌이 아니라 100촌까지도 파악해 연줄을 만들어 놓고야 마는 인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관 대작들과의 커넥션을 무기로, 또 한편으로는 형배가 이끄는 조직폭력배의 물리력을 무기로, 그는 차근차근 자신의 잇속을 챙기며 영역을 넓혀 간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을 견제하는 형배와 그의 졸개들에 맞서 과감하게 경쟁 조직과 밀거래를 일삼는다. 그 때문에 곤욕을 치르긴 하지만, 주먹 하나만을 믿는 형배에 비하면 최익현이라는 인물은 권력과 폭력을 양날의 칼로 휘두를 줄 아는 처세의 달인이다.

이것은 윤종빈이 한국 현대사의 이면, 혹은 한국 기득권 세력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인맥 네트워크를 통한 자신들만의 견고한 카르텔 안에서 이권을 나누고 세력을 확장했던, 폭력마저도 착취하고 활용했던 그 이중성과 치사함.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가 규정한 아메리칸 대부의 속성이 가차 없는 폭력이라면, 윤종빈이 포착한 한국형 대부는, 한마디로 기회주의의 화신인 셈이다.

어쨌든 N세대 감독 윤종빈은 <용서받지 못한자>에서 이 사회의 마초성이 자라나는 토양으로서의 군대를 탐색한 뒤 <비스티 보이즈>에서 그것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폭력적으로 파열되는 풍경을 목격하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선 아버지들의 흑역사를 통해 그 뿌리를 캔다.

재능 있는 감독의 시선은, 작품을 거듭할 수록 깊어지기 마련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윤종빈을, 박찬욱과 봉준호 등을 잇는 작가적 상업영화 감독의 반열에 둔탁한 울림과 함께 올려 놓았다.

2012.2.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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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구닥다리의 환희

영화 이야기 2012/02/02 16:46 Posted by cinemAgora


1926년 서울 종로3가 단성사에서 흑백 무성 활동사진 <아리랑>이 첫 상영 됐다. 객석에는 장안의 내로라하는 사교계 인사들이 한껏 옷을 차려입고 정면을 응시하고, 스크린 앞 오케스트라박스에서는 악사가 영화의 기승전결과 주인공의 감정선에 따라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곡을 연주하고, 무대 옆에서는 변사가 화면에 맞추어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해설을 곁들인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의 기립박수에,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던 주인공 나운규는 무대 앞으로 나와 관객에게 화답한다.

나운규는 무성영화의 전설이다. 그러나 유성영화가 등장하고 흥행 혁명을 일으키자, 나운규 소속 영화사는 나운규에게 유성영화로의 전업을 강요한다. 하지만 나운규는 활동사진만이 유일한 예술이라고 믿고, 시류를 거스르며 계속 활동사진을 고집하다, 모든 명예와 재산을 탕진하고 폐인으로 산다. 한편 무명시절부터 나운규를 사모하던, 유성영화계의 떠오르는 스타 문예봉이 구세주로 등장한다. 과연, 나운규는 유성영화로 전업해서 재기할까? (주: 여기 나온 나운규, 문예봉 일화는 99% 팩션이며 사실과 다릅니다)

1927년 미국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아티스트>(2월 16일 개봉)는 실제로 흑백이고, 무성이고, TV 화면과 똑같은 화면비율로 제작됐다. 스마트폰과 유튜브와 <아바타>가 활개치는 21세기에 이런 구닥다리 영화가 통할까? 실제로 미국에서는 영화 초반에 걸어나가는 관객이 있었고, 영국 영화관에서는 항의하는 관객에게 환불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선 영화를 보러 찾아가기도 어렵다. <아티스트>에게 단 한 관도 내주지 않는 복합 영화관이 허다하니, 예술극장에나 가야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영화 평론계와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은 거의 만장일치로 <아티스트>에 열광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안 평론가는 입에 거품을 물고 격찬한다. 한 지인은 "칼라 유성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1952)보다 훨씬 재밌어. 난 유성영화의 발명이 영화 역사를 퇴보시켰다는 주장을 이제 이해하겠어"라고 말한다.

얄궂게도 영화의 배경인 미국이 아닌, 프랑스 자본과 감독과 주연배우가 160억 원 예산으로 만든 <아티스트>는 프랑스에서 140억 원의 수입을 올렸고, 2012년 1월 22일 현재 미국에서 13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모든 사람이 <아티스트>를 영화관에서 볼 필요는 없다. 안 보고 후회하면 된다. 영화 애호가가 아니면 후회할 필요도 없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아티스트>는 1,000 rpm에서 시작해서, 2,500 rpm을 잠시 치고는, 2단 기어로 돌입해서 2,000 rpm으로 순항하다가, 5단 기어에 이르기까지 기어 변속을 반복하는데, 매 기어 변속의 시점에선 가슴 속엔 새로운 환희가 몰려온다.

Written by 하일수(미쿡 사는 3M흥업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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